2025년 11월 28일 금요일

회사일

회사 일은 성과로 평가 받고 그걸 원동력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회사는 돈을 버는 집단이기에,

성과가 곧 돈이 되며,

돈을 많이 벌어주는 일을 하면,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기업이 커질수록,

내가 하는 일이 회사의 실제로 매출과 직결되는 경우 혹은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대부분의 일은

그냥 회사 일이다.

그냥 일을 하고,

그 일이 필요하다고 해서 하고,

그 일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직장 생활이다.


평가도 잘 받으면 좋겠지만,

1년의 정기적 평가는 사실 회사 생활에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내가 하는 일을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알아주지 않는 일을 하는 것만큼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더 괴로운 건,

내가 하는 일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일이 진행이 잘 안되고 있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이 닥쳐 올 때이다.


내 일을 잘 알아주는 상사가 있다면

애초에 그럴 일은 없었을 일이다.

내 일을 하찮게 봐주지 않고

관심을 가져주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있어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상사라면

애초에 그런 문제는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사는 피하고 싶다.

얘기를 제대로 들어주지도 않고,

잘된다는 얘기만 듣고 싶어하며,

잘된다는 얘기를 해주는 사람만 좋아한다.


어려운 얘기에는 대놓고 불만을 드러내고,

이미 고통스러운 나를 더 궁지로 몰아 넣는다.

이미 문제를 알고 힘들어 하는 직원의 얘기는 듣지를 않는다.

듣지를 않는다.

듣지를 않는 상사와 얘기하고 싶은 직원은 단 한 명도 없다.


사람은 별거 없다.

그저 자존감 하나로 살아간다.

그 자존감이 지켜져야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아프지도 않고,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조직은 공장의 기계처럼 닥달하듯 조여야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한명 한명이 모두 자존감을 느끼면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비로소 그 조직은 건강해지고,

그냥 아무나 다른 일 하는 사람 붙여서

일 시키면서 갖다 붙이는 단어로서가 아닌

진정한 시너지 효과가 나오며 기대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다.



파각에 관하여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외부 환경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없다.

노력은 하지만 결과에 대해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지 말자.


모든 성공에는 운이 중요하다.

노력은 해야겠지만

이것이 안되면 죽겠다는

마음가짐으로는 안된다.

끝없이 노력하되 너무 무겁지 않게

꾸준하게 나가야 한다.

한방에 끝나지 않는다.


계속 끊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나아가자.

그렇게 수많은 시도중에 

하나에라도 운이 따르길 기대하며



2024년 1월 19일 금요일

인생의 3단계

열정기

- 말 그대로의 열정기. 이 시기에 이런 열정이 영원할 거라 착각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운이 좋으면 성공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언젠가는 성공할거라는 믿음으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몰아붙이기만 한다. 또는 자신의 능력에 비해 그것이 이미 성공인 줄도 모르고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멈추지 않고 스스로를 고갈시킨다. 

권태기

- 열정이 식어 권태가 찾아오는 시기. 열정이 영원할 것이라 착각해 몸을 혹사시키면 결국엔 모든 것이 고갈되는 이유로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시기. 열정적이었던 삶을 살아온 사람일 수록 권태가 더 심하다. 이 시기에 이르러 열정은 사라졌고 이제 권태만이 남았다고 착각한다. 보통 남은 인생은 의미가 없을거라고까지 생각한다. 일종의 Throttling 상태.

성숙기

- 권태기에 이르렀으나 그래도 오랜기간 포기하지 않고 버텨온 자들에게 허락되는 시기. Throttling을 통해 어느정도 몸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오게 되면 서서히 권태의 어둠이 걷히고 체력은 예전 같지 않지만 이전의 호기심과 재미가 살아나는 시기. 권태기를 어떻게 버텨왔느냐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것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김창옥님의 인생의 3단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느껴지는 바가 있어 내용을 덧붙여 봤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겪는 수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도 비슷한 것들을 경험했고, 지금은 권태기와 성숙기의 중간에 있는 듯 하다.

하지만 권태기가 영원할 것 같다는 착각에서 순순히 빠져나오기가 쉽지는 않다.

무엇이 보장되어 있는지는 나로서도 알 수 없다.


Throttling은 이미 걸려있는것 같고,

그저 묵묵히 나의 속도를 지켜 가다보면,

내 스스로 편안할 수 있는 곳에 도착하길 바랄 뿐이다.

2024년 1월 16일 화요일

신장개업

원래는 그저 이직하는데 도움이나 될까 싶어 시작한 기술 블로그였는데

이직을 하고 여기저기 흘러다니다 보니 잘 안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와서 보니 예전 포스트들이 감춰져있었다.

어차피 썩어가는거 그냥 열어두자 싶어 다시 열어두었다.

썩어가는 와중에도 어느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나 보다.


블로그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고 누가 와서 볼지도 의문이지만

뭐 내 블로그 내가 맘대로 하는 건데 누가 뭐라 할까 싶어 다시 하기로 했다.


현재 직장에서 새로운 기술을 논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그래도 내가 즐기며 했던 것이 논문 보며 정리하는 것이었으니

여기서라도 갈증을 풀어야겠다는 쪽으로 갇혀있던 의식에 물꼬를 텄다.


뭔가 감추는 것도 많고 숨기는 것도 많았는데

감추고 숨긴다고 뭐가 얼렁뚱땅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논문 정리도 하고

해보고 싶었던 컨셉 위주의 연구 아이템이나 여기서 한번 썰을 풀어봐야겠다.


예전 포스트는 보니 하루에 하나씩 논문을 정리한다고 했었는데

미친건가 싶다.

2주에 하나씩은 뭐라도 족적을 남겨보자.

연구자라는 놈이 그래도 트렌드는 따라가야지?

2023년 3월 30일 목요일

즐거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에서는 기쁨을 얻을 수 없다 했다.


나 도대체 얼마나 기쁘려고 유난히도 고난스러운걸까.


이제 좀 기뻐도 되지 않나 싶은 마음이다.

2023년 2월 13일 월요일

고대

그 복잡한 알고리즘으로도

여긴 찾을 수 없을게다.

인과가 없으니까.


여긴 발견해야 할 이유도

발견할 수 있을 키워드도 없다.


라벨은 내용과 관계없고

극히 사적일 뿐이다.

난지도 속에 깊숙히 파묻힌 버려진 캐리어 같은 공간


그 쓰레기 더미 안에서

의외로 깨끗한 캐리어를 발견하게 된다면

너는 기대를 하게 될까.

겁을 집어 먹게 될까.


왜 굳이 이런 걸 찾으려 했는지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동기에

그 답이 있지 않을까.


나는 보이지 않지만

나는 볼 수 있는

은밀한 곳에서

세련되게 동기화 할 수 있는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 거추장스러움을

대수롭지 않게 보아주는

그런 사람이길 바란다.

2022년 12월 12일 월요일

궁금

언제쯤 이 블로그가 검색될까?

뭔가 많이 끄적거리긴 했는데

아무도 오지 않는다.


딱히 음침하려고 노력하진 않지만

모든 것이 연결된 곳에서

아무것과도 연결되지 않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스스로 광고하는 건 재미가 없다.

어차피 관리도 하는둥 마는둥이니

쓰고 싶은걸 쓰고

그냥 흘러가자.


연연하지 않고 글을 쓰니

고고한 취미로 그만이다.


내가 알아주면 그만이다.

Typative

Talkative 했었다.

주고 받는 것에는

체력 소모가 심했다.

본질보다 주고 받음에 더 치중되었다.


나의 이야기를 위해서는

말은 의미없다.

나는 말보다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논쟁을 피하고 싶다.

모든 노력은 오래되면 그걸로 정답인 것이다.

내겐 공감이 필요할 뿐

더 맞는 것은 필요 없다.

휴가

그렇게 기대했다. 고대했다.

막상 도달하니 찰나의 흥분 뒤에 다시 무덤덤

이게 뭔가 싶었다.


종종 일상의 걱정이 불거진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무시했다. 노력해서.


빈도 수가 줄었다.

방해의 강도도 줄었다.

그러다 보니 멍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돌아왔다.

돌아오니 허무했다.

1주일이 지났지만 내게 남은 게 없었다.


문득

이렇게 허무해 본 게 얼마 만인지

새삼스러웠다.

잘 비워냈다 싶다.

뜬금

불쑥 무언가를 쓰고 싶었다.

예전엔 샘솟는 무언가가 줄줄 흘러 넘쳐 페이지를 검게 채웠으나

이제 탄력 잃은 실처럼 긴장감이

끊어져 버린다.


욕망 자체는 다행히 

손에 박혀 옷 섬유에 걸려 스칠 때마다 따끔거리는 가시처럼

날 자극하지만


페이지를 열면

무엇을 쓰려고 했었는지도 모를 만큼

사그라져 버린다.


구멍이 큰 관에 호흡을 불어넣는 것 마냥

후욱

헛힘이 빠진다.


쪼그라들어 간다.

2022년 9월 1일 목요일

무제

종종 뜬금없는 단어로 시작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든다.

주제는 의미 없으며
단순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로 시작해보고 싶음이다.
그저 시작해서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보고 싶음이다.

나에 대한 시험같은 것이라기 보단
충동적인 단어의 시작이 만들어내는 끝을 알아보고 싶어서이다.

나조차도 내가 어디로 갈지 예측할 수 없는 형태.

그 지긋지긋한 주제와 맥락 컨텍스트의 감옥
누가 가두지도 않은 곳에 갇혀
광우병 걸린 광우마냥 돌던 곳을 맴도는 지겨움

자연스러움은 나를 옭아매고
부자연스러움이 채찍질한다.

쓸 수 있는 단어는 한정적이다.
게다가 그 사전은 얇아진다.

조잡한 몇 개의 단어조차 문득 뿌옇다.
불쾌하고 서러운 감정은
토해내지도 내뱉지도 못한다.

섭취한 것이 없으니
앙상하다.

그 가지와 뼈대 기둥
한결같이
보잘것 없어
보여주기 부끄럽다.

내포 행간은 얼어죽을
어디서 들어먹은 명징 근처에도 못하다.

그 많던 유희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도 그럴 것이' 라는 관용구로
맥락없이 무언가 써보고 싶었던 취기는
기백없이 무너지고 두통만 남았다.

나는
무언가 말하고 싶었다.

무언가 섬세한 그것
아니
누군가가 세련되다고 말해줄 수 있을만한 그것
그런 것
그런 종류의 것
을 말하고 싶었지만

아직도 까마득하다.

2022년 8월 15일 월요일

부둣가였다.

노년의 낚시꾼이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본디 숫기 없는 나로서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기 쉽지 않았으나

그때는 왠지 모를 용기가 났었다.

그에게 여쭈었다.

"선생님, 미끼를 무엇을 쓰시는지요."

"아 이거요. 쓰테미유"

쓰테미란다.

낚시 용어중 일본어가 많다고 생각했던 관계로

그저 미끼 이름인 줄 알았다.

당시 낚시를 좋아한다고 외부에 공표는 하고 다녔으나

그럴듯한 식견이 쌓일만한 경험은 없었기에

그저 그런 미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럴듯한 낚시터에서 벗어나

잠에서 깼다.


네이버에서 쓰테미가 무엇인지 검색했다,

"すてみ: 목숨을 걺, 필사의 각오로 전력을 다함."


원하는 바가 있었으나, 박사과정을 밟아야 하는지에 대해

한없이 고민하던차에 꾸었던 꿈이었다.


난 나의 의지를 믿고

고민을 청산하고

다시 공부의 길로 들어섰다.


내 처음이자 마지막

특별한 꿈이었다.


2022년 5월 15일 일요일

자존감

진정한 자존감은

상대적이지 않다는걸 깨달았다.


어설픈 자존감은

대충 이렇다.


난 너를 좋아해.

근데 니가 나를 안좋아하는 것 같아.

그래서 나도 널 안좋아할거야.

아니 널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을거야.

절대로 니가 먼저 좋아한다고 표현해줄때까지

난 내 마음을 보여주지 않을거야.

뭐 이런식이다.


진정한 자존감은

이렇다.


난 너를 좋아해.

니가 나를 좋아하건 말건

상관없어.

내가 너를 좋아하는 감정이

그런것엔 좌우되지 않아.

나는 너를 좋아하니

네가 좋다 말하고

그리고 그 다음을 위해 노력할거야.


자칫 높은 자존감이

스토커가 되라는 말처럼 들릴수도 있다.

스토커는 이미 사람과의 관계를 판단하는데

문제가 있는 사람이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어설픈 자존감은

묘함이 오가는 중에

내가 상처 받을 위치에 놓일 것이 두려워

온전히 나를 표현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진정한 자존감은

그런것에 연연하지 않고

거절을 당하면 당하는대로

두려워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자존감은 수동적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상대의 의사에 좌우되지 않고

자신을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존감이 낮은 사람과의 관계는

항상 불투명하고 피곤하다.

반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과의 관계는

언제나 선명하고 상쾌하다.


나는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과연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맞는 걸까?






관리의 부재

조직이 융합하는데는

싸움이 필요하다.


본인도 알 수 없는

서로가 자신에게

허용되는 영역을 확인하기 위해선

치열하게 싸우고 내주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융합엔

서로가 싸울수는 있지만

헤어지는 관계는 아니라는

강력한 믿음이 전제된다.


그래야 찢어진 종이마냥

얼기설기 지저분하지만

무언가 꼭 맞는 접점으로 융합할 수 있게 된다.


현실은

칼을 쓴다.

많은 사람들의 융합은 불가능하고

시간소모가 많다는 이유로

포기한다.


문제가 생기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만큼

더 많은 영역을 규제하고

부딪히지 않을 명목으로

서로를 만나지 못하도록 한다.


관리의 편리함을 위해

문제의 영역에 마진을 두고

모두가 그곳을 범하지 않도록

제한할 뿐이다.


문제는 생기지 않지만

서로는 알아볼 수 없고

긴밀히 가까워지지도 못한다.


문제는 항상 일어난다.

많은 영역은 제한된다.

구성원은 자유를 잃는다.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단순히 개인주의 같은 것이 아니다.

조직은 역사를 쌓으며

영역을 제한하고

아무도 만날수 없다.


구성원들에게 있어

회사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한 곳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회사가 자초한 일이다.

그것은 관리의 게으름으로 인한

결과물일 뿐이다.

존중

사람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인정이 필요해.


내가 존중할 수 있을만한 사람이다.

라는 인정.


그게 없이는 공허해.

참 별게 아닌데 그게 없으면

누구의 밑으로도

누구에게도 소속되려하지 않아.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것

그건 참 어려운 일이야.

정답도 없고

공허해.


그 마음

언제 떠날지 모르거든.

2022년 3월 15일 화요일

여유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온전히 생각할 시간이 인정받는 여유가 필요하다.


쉬는 시간이 아니다.

그저 온전한 공백

쉬는 시간을 넘어선

완전한 여유

그게 필요하다.


짬을 내는 것이 아니다.

일이 없어 보일만큼 온전한 공백만이

무언가를 그릴 수 있을만한

새하얀 도화지를 만들 수 있고

그제서야 우리는 새로운 걸을 그릴 수 있다.


왜 새로운 걸 생각하지 못했느냐 하지 마라.

정말 그에게 주어지는 시간을

온전히 믿고 있었는지

그 말을 꺼내기 전에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너무 촉박하고

여유가 없고

쫓긴다.


쫓기는 사람에게 숨 고를 시간을 주는 것과

그저 한가로이 하늘을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시간인 것이다.


쫓기는 사람은 결코

떨어지는 사과를 볼 수 없다.

2022년 2월 20일 일요일

관계

내가 누구에게 마음을 준다는 건
나의 감각을 상대에게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나의 감각은
그 사람의 눈과 입술 몸짓 옷매무새까지 스며들어
수 많은 인과를 해독하려 노력한다.

그와의 관계가 저물무렵
우리는 거둘 수 없음을 알게된다.

내어준 나의 일부는
회수할 수 없으면
단지 베어내야 함을 깨닫는다.

넘쳐나는 감정을
수없이 도려내면
우리에겐 남아있는 것이
얼마 없음을 알게된다.

도려내는 것은
머리를 깍는 정도가 아닌
작두에 올려진 손가락과 같은
모골이 송연해지는 위협이 된다.

살기 위해
버티기 위해
벰 이후의 휘청임을 버틸 수 없기에
우리는 더 이상의 확장을 멈춘다.

건조해진다.
바짝 갈라진다.
딱딱해진다.

그 깊고 깊은 내면의
이주 작은
연약하고도
부드러우며
향기로운
그 마지막 속살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아직 남은 많은 감정을
말라 비틀어
단단한 껍질로
만들어 버티기로 결정한다.

무미 건조해지는 것은
차마 잃고 싶지 않은
내 삶의 마지막 
아주 작은 순수의 기억을
보존하기 위한
저항인 것이다.




2022년 2월 18일 금요일

경화

차라리 그런

단단함이나 묵직함이었으면 좋으련만


그저 딱딱함에 불과하다.

유연하여 뭐든 될 수 있을것 같음은

잊은지 오래다.


색도 바랜듯 하고

단단하여 갈라진 류의 것들이 그러하듯

생동감이 없다.


부드러워 조물락 거리고픈

앙증맞음보단

뭐하나 해될것 없이

그냥 있는데도

차마 손대기 싫은 느낌의 것이

되고 있다.


그렇게 촉촉하거나

물렁한 무언가

그 무언가가 자신없다.


그낭

나는 푸석해진채로

더 푸석해짐을

피할수도 없이

맡긴채 퇴화한다.

2022년 1월 2일 일요일

그리하여

나아가는데

자유로워야 하며

시선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스스로 업신여기지 말 것이며

쌓은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능히 이뤄왔으니

스스로를 존경하며 따르고 의심치 말고

담대히 세상을 대하여

현실에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나의 말은 더이상 가볍지 않으니

그저 의견을 구하기보단

스스로 길이 되어야 한다.


한마디 한마디를 커다란 기둥을 뿌리내리듯

확신을 두고

의심치 말며

나아가면

그 뿐이다.


나의 것은

미묘하게 엇나갈 순 있으나

결코 틀리지 않는다.


그러니 나아가면

어느덧 도달하거나

가깝게 됨은 필연적이니

먼저 스스로를 믿어 의심치 않는

담대함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또 어떠하랴.

그저 한번 뿐이니

군림할 기세로

뻗어나가면

닿을 것이다.


이젠

하나의 큰 걸음을 내딛어

나아가야만 한다.

그렇게 하나의

길이 되어야만 한다.


2021년 8월 31일 화요일

불안

불안했다.

굳이 입밖으로 내지 않은건 불안이 현실이 될까봐.

난 불행하진 않지만 불안한 삶을 살았다.

술에 빠져 살던 아버지의 사고로

어머니가 집안을 지탱했다.


나의 불안한 상상이 시작됐다.

어머니가 없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상상하기 싫은 삶을 떠올리며

하지 않아도 될 불안을 장작삼아

젊음을 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