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 이 블로그가 검색될까?
뭔가 많이 끄적거리긴 했는데
아무도 오지 않는다.
딱히 음침하려고 노력하진 않지만
모든 것이 연결된 곳에서
아무것과도 연결되지 않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스스로 광고하는 건 재미가 없다.
어차피 관리도 하는둥 마는둥이니
쓰고 싶은걸 쓰고
그냥 흘러가자.
연연하지 않고 글을 쓰니
고고한 취미로 그만이다.
내가 알아주면 그만이다.
언제쯤 이 블로그가 검색될까?
뭔가 많이 끄적거리긴 했는데
아무도 오지 않는다.
딱히 음침하려고 노력하진 않지만
모든 것이 연결된 곳에서
아무것과도 연결되지 않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스스로 광고하는 건 재미가 없다.
어차피 관리도 하는둥 마는둥이니
쓰고 싶은걸 쓰고
그냥 흘러가자.
연연하지 않고 글을 쓰니
고고한 취미로 그만이다.
내가 알아주면 그만이다.
Talkative 했었다.
주고 받는 것에는
체력 소모가 심했다.
본질보다 주고 받음에 더 치중되었다.
나의 이야기를 위해서는
말은 의미없다.
나는 말보다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논쟁을 피하고 싶다.
모든 노력은 오래되면 그걸로 정답인 것이다.
내겐 공감이 필요할 뿐
더 맞는 것은 필요 없다.
불쑥 무언가를 쓰고 싶었다.
예전엔 샘솟는 무언가가 줄줄 흘러 넘쳐 페이지를 검게 채웠으나
이제 탄력 잃은 실처럼 긴장감이
툭
끊어져 버린다.
욕망 자체는 다행히
손에 박혀 옷 섬유에 걸려 스칠 때마다 따끔거리는 가시처럼
날 자극하지만
페이지를 열면
무엇을 쓰려고 했었는지도 모를 만큼
사그라져 버린다.
구멍이 큰 관에 호흡을 불어넣는 것 마냥
후욱
헛힘이 빠진다.
쪼그라들어 간다.
진정한 자존감은
상대적이지 않다는걸 깨달았다.
어설픈 자존감은
대충 이렇다.
난 너를 좋아해.
근데 니가 나를 안좋아하는 것 같아.
그래서 나도 널 안좋아할거야.
아니 널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을거야.
절대로 니가 먼저 좋아한다고 표현해줄때까지
난 내 마음을 보여주지 않을거야.
뭐 이런식이다.
진정한 자존감은
이렇다.
난 너를 좋아해.
니가 나를 좋아하건 말건
상관없어.
내가 너를 좋아하는 감정이
그런것엔 좌우되지 않아.
나는 너를 좋아하니
네가 좋다 말하고
그리고 그 다음을 위해 노력할거야.
자칫 높은 자존감이
스토커가 되라는 말처럼 들릴수도 있다.
스토커는 이미 사람과의 관계를 판단하는데
문제가 있는 사람이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어설픈 자존감은
묘함이 오가는 중에
내가 상처 받을 위치에 놓일 것이 두려워
온전히 나를 표현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진정한 자존감은
그런것에 연연하지 않고
거절을 당하면 당하는대로
두려워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자존감은 수동적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상대의 의사에 좌우되지 않고
자신을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존감이 낮은 사람과의 관계는
항상 불투명하고 피곤하다.
반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과의 관계는
언제나 선명하고 상쾌하다.
나는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과연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맞는 걸까?
조직이 융합하는데는
싸움이 필요하다.
본인도 알 수 없는
서로가 자신에게
허용되는 영역을 확인하기 위해선
치열하게 싸우고 내주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융합엔
서로가 싸울수는 있지만
헤어지는 관계는 아니라는
강력한 믿음이 전제된다.
그래야 찢어진 종이마냥
얼기설기 지저분하지만
무언가 꼭 맞는 접점으로 융합할 수 있게 된다.
현실은
칼을 쓴다.
많은 사람들의 융합은 불가능하고
시간소모가 많다는 이유로
포기한다.
문제가 생기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만큼
더 많은 영역을 규제하고
부딪히지 않을 명목으로
서로를 만나지 못하도록 한다.
관리의 편리함을 위해
문제의 영역에 마진을 두고
모두가 그곳을 범하지 않도록
제한할 뿐이다.
문제는 생기지 않지만
서로는 알아볼 수 없고
긴밀히 가까워지지도 못한다.
문제는 항상 일어난다.
많은 영역은 제한된다.
구성원은 자유를 잃는다.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단순히 개인주의 같은 것이 아니다.
조직은 역사를 쌓으며
영역을 제한하고
아무도 만날수 없다.
구성원들에게 있어
회사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한 곳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회사가 자초한 일이다.
그것은 관리의 게으름으로 인한
결과물일 뿐이다.
사람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인정이 필요해.
내가 존중할 수 있을만한 사람이다.
라는 인정.
그게 없이는 공허해.
참 별게 아닌데 그게 없으면
누구의 밑으로도
누구에게도 소속되려하지 않아.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것
그건 참 어려운 일이야.
정답도 없고
공허해.
그 마음
언제 떠날지 모르거든.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온전히 생각할 시간이 인정받는 여유가 필요하다.
쉬는 시간이 아니다.
그저 온전한 공백
쉬는 시간을 넘어선
완전한 여유
그게 필요하다.
짬을 내는 것이 아니다.
일이 없어 보일만큼 온전한 공백만이
무언가를 그릴 수 있을만한
새하얀 도화지를 만들 수 있고
그제서야 우리는 새로운 걸을 그릴 수 있다.
왜 새로운 걸 생각하지 못했느냐 하지 마라.
정말 그에게 주어지는 시간을
온전히 믿고 있었는지
그 말을 꺼내기 전에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너무 촉박하고
여유가 없고
쫓긴다.
쫓기는 사람에게 숨 고를 시간을 주는 것과
그저 한가로이 하늘을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시간인 것이다.
쫓기는 사람은 결코
떨어지는 사과를 볼 수 없다.
차라리 그런
단단함이나 묵직함이었으면 좋으련만
그저 딱딱함에 불과하다.
유연하여 뭐든 될 수 있을것 같음은
잊은지 오래다.
색도 바랜듯 하고
단단하여 갈라진 류의 것들이 그러하듯
생동감이 없다.
부드러워 조물락 거리고픈
앙증맞음보단
뭐하나 해될것 없이
그냥 있는데도
차마 손대기 싫은 느낌의 것이
되고 있다.
그렇게 촉촉하거나
물렁한 무언가
그 무언가가 자신없다.
그낭
나는 푸석해진채로
더 푸석해짐을
피할수도 없이
맡긴채 퇴화한다.
나아가는데
자유로워야 하며
시선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스스로 업신여기지 말 것이며
쌓은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능히 이뤄왔으니
스스로를 존경하며 따르고 의심치 말고
담대히 세상을 대하여
현실에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나의 말은 더이상 가볍지 않으니
그저 의견을 구하기보단
스스로 길이 되어야 한다.
한마디 한마디를 커다란 기둥을 뿌리내리듯
확신을 두고
의심치 말며
나아가면
그 뿐이다.
나의 것은
미묘하게 엇나갈 순 있으나
결코 틀리지 않는다.
그러니 나아가면
어느덧 도달하거나
가깝게 됨은 필연적이니
먼저 스스로를 믿어 의심치 않는
담대함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또 어떠하랴.
그저 한번 뿐이니
군림할 기세로
뻗어나가면
닿을 것이다.
이젠
하나의 큰 걸음을 내딛어
나아가야만 한다.
그렇게 하나의
길이 되어야만 한다.